무연고 장애인 동의서 꾸며 강제퇴소… 인권위는 눈감았다

작성자: sasdfda58님    작성일시: 작성일2022-07-24 02:51:32    조회: 354회    댓글: 0
집도 절도 없는 장애인, 그것도 뇌손상 등으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보호시설에서 지내온 무연고 장애인 10명이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2년 간 두 차례에 걸쳐 ‘시설 밖 세상’으로 내보내졌다. 10여평 규모의 시설 밖 서울시 지원주택에선 홀로 살아야 하며, 시설에 있을 때처럼 ‘상주 의료진’의 24시간 관리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을 시설에서 퇴소시키려면 본인이 날인한 ‘퇴소 동의서’가 필요하다. 자기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겨운 장애인들의 동의서엔, 신기하게도 각자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퇴소 동의서에 대한 조사를 거쳐 ‘본인의 (퇴소) 의사나 후견인, 보호자가 없는 상태였고, 시설이 퇴소를 결정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사문서 위조는 범죄다.

하지만 인권위는 “탈(脫)시설이라는 목적이 정당하다”며 시설 측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탈시설’이란 보호시설에서 관리 받는 장애인을 서울시 지원주택으로 이주시키는 것으로, 당시 인권위에는 ‘탈시설 운동가’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족 없고, 말못하는 장애인들이 혼자 사는 까닭

19일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탈시설 장애인 현황과 조선닷컴 취재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소재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 운영하는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 운영진은 2019~2020년 뇌병변 장애인 A(38·여)씨와 뇌병변·지적장애인 B(43)씨 등 9명을 시설에서 내보냈다. 이들 모두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무연고 중증장애인’이었다.

여기에 보호자와 연락이 안 돼 무연고나 다름없는 뇌병변 지적장애인 C(42·여)씨까지 합하면, 탈시설에 대한 거부 의사를 대신 밝혀줄 보호자가 없는 10명의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내보내진 것이다. 이들 10명은 당시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 지체 장애 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어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고 인권위는 판정했다. 일부는 음식조차 입으로 씹어서 삼키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장애인 거주시설 운영진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퇴소시킬 때 반드시 본인이나 보호 의무자의 퇴소 동의서를 받아 관할 관청에 제출토록 정신건강복지법은 규정하고 있다. 정상적 판단과 의사 전달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비인도적인 퇴소를 막기 위해서다.

서울 양천구청에 확인했더니 10명 모두 퇴소 동의서가 제출돼 있었다. 동의서엔 의사소통은 물론, 손가락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들 10명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시설에서 머문다면, 중증장애인은 상주하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심리상담사, 영양사 등 장애인 관리 전문인력과 의료진의 관리를 받는다. 시설을 나가면 각자 가정에서 머물며 도우미 등 시간제로 활동하는 ‘활동지원사’의 조력을 받는다. 활동지원사 서비스 비용은 정부가 댄다.

활동지원사는 어떤 사람일까. 성인이면 누구나 40시간 교육을 수료한 뒤 10시간 실습을 마치면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중증장애인에게 기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전문가’라고 부르기엔 어렵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간호조무사와 간호사가 종종 있긴 하지만 활동지원사 대부분은 장애인 관리 전문인력이 아니며, 더욱이 무연고 장애인은 대개 동거할 가족조차 없다.

실제로 작년 7월에는 똑같은 장애인 시설(향유의집)에서 머물던 장애인 D씨가 소위 ‘탈시설’한 이후 서울시 지원주택에 입주한 뒤 욕창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넉 달 만에 숨지는 일도 있었다. 사인(死因)은 ‘패혈증’이었는데, 욕창 환자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욕창은 주로 침대에 누워 지내는 환자가 장시간 자세를 바꾸지 못해 피부가 짓눌려 괴사하는 병이다. 전문가 관리 하에서는 잘 생기지 않는 병이며, 시설 관리 인력의 제1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욕창 확인’이다.

동의서가 사실이라면, 무연고 중증 장애인들이 스스로 퇴소해 이런 환경에 놓이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인권위, 자발적 퇴소 아님을 확인하고도… “목적 정당” 두둔

프리웰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근무하던 공익 제보자 박대성(47)씨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의 퇴소 동의서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19년 12월과 2020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내보내진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도록 다시 시설로 입소 시키고,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이었다.

박씨는 “시설 측 행위가 워낙 반인권적인 만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인권위가 조치할 줄 알았다”고 했다. 오판이었다. 인권위는 두 차례 조사를 거쳤지만 박씨의 진정을 기각했다. 이어 박씨가 낸 행정심판도 기각했다.

인권위가 조사한 ‘사실관계’ 자체는 박씨 민원과 다르지 않았다. 진정 처리 결과서에도 퇴소자들의 상태가 심각하고, 동의서도 직접 작성한 게 아니란 내용이 담겼다. 2019년 퇴소된 중증장애인 6명에 대한 1차 조사 뒤 ‘본인 동의서 및 의사가 확인 안 되고, 본인 의사 또는 후견인, 보호자가 없는 상태여서 피진정시설의 퇴소위원회가 퇴소를 결정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적었다. 2020년 퇴소된 중증장애인 4명에 대한 2차 조사 뒤에는 ‘의사소통 불가’라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인권위는 “장애인들이 집단적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 사회의 가정과 같은 환경으로 변환을 도모했기 때문에 그 목적이 정당하다. 탈시설은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장애인 거주 시설이 아무리 좋더라도, 탈시설은 개별적 지원이 가능해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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