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더 빨리 발표할 수도 있었다. SSG는 이미 12월 중순 상당수 대상자와 협상을 마친 상황이었고, 비FA 다년 계약을 제시한 한유섬 협상만 남겨두고 있었다. 한유섬이 25일 5년 총액 60억 원에 계약함에 따라 모든 대상자와 협상이 마무리됐고, 이를 26일 발표했다. 비FA 다년 계약이라는 특이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협상을 더 빨리 종결할 수 있었던 셈이다.
올해는 도쿄올림픽 및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예년보다 훨씬 늦게 끝났다. 이를 생각해도 연내 협상 완료는 빠른 속도다. 그렇다고 잡음 하나 없이 모든 선수들과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됐던 건 아니다. 연봉 협상에 에이전트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예전처럼 일방적인 제안으로는 합의점에 다가설 수 없다.
대신 SSG는 몇몇 선수들은 몇 차례 집중적으로 만나 합의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섭섭함을 느낄 수 있는 일부 선수들은 류선규 SSG 단장이 직접 만나 인간적인 이야기도 건네며 다독였다. 되도록 연내에 협상을 마감하고 2022년부터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뛰자는 구단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돈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오가고, 올해 연봉이 내년 연봉의 기준점이 되는 만큼 모든 선수들을 만족시킬 만한 완벽한 협상은 사실 없다. 연봉이 크게 오른 선수들이야 선뜻 사인했지만, 사실 전체적인 연봉 인상폭은 제한된 상태였다. 류선규 단장은 “어쨌든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한 게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삭감 대상자가 아주 많은 건 아니었지만, 일부 고생한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던 점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비교적 빨리 도장을 내놓은 것은 연봉 고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는 내부 평가다. SSG는 몇 년째 연봉 협상 기조를 바꾸지 않은 채 이어 가고 있다. 세부적인 고과도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팀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팀 성적이 좋으면 파이가 커진다. 자연히 인상폭은 크고, 삭감폭은 줄어든다. 반대로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도 인상폭은 제한되기 마련이다. 올해도 그런 기조를 따랐다.
실제 2020년 팀 성적이 9위로 처지자 고생한 선수들의 인상폭도 크게 제한됐다. 그럼에도 연봉 협상은 가장 먼저 끝냈다. 선수들은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2019년 정규시즌 2위 직후 연봉이 꽤 많이 올랐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고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높다. “팀 성적이 좋으면 올려주고, 올해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전반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고과 시스템도 단순히 숫자만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연봉 협상 실무자인 남기남 운영팀 매니저가 144경기를 모두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며 기록 이상의 것들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보이지 않는 실책이 있었는지, 불운한 상황이 있었는지, 선수들이 팀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꼭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동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플레이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모두 챙긴다. 이는 144경기 전체에서 나오는 숫자와 더불어 고과 산정에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도 이를 알고 있기에 고과 산정에는 큰 불만이 없는 편이다.
결국 고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2년 연속 연봉 협상 1위의 원동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류 단장은 “선수단과 구단의 신뢰가 있다. 다르게 보면 구단의 고과 산정 시스템과 제안 철학이 매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좋게 보면 구단의 연봉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고 돌아봤다.
몇 년 전 시스템 전환기에는 일부 선수들이 불만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SSG도 협상이 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 기조를 이어 가면서 최근에는 안정화됐다는 평가다. 이제 시스템을 아는 선수들이 생각하는 지름길은 단 하나다. 2022년 좋은 팀 성적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는 날을 꿈꾼다.
기사제공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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