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우승 ; 022 창녕투어 전국도로사이클대회
2022년 2월 11일, 저는 경남 창녕에서 열린 「2022 창녕투어 전국도로사이클대회」 마지막 경기, 크리테리움 출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크리테리움이란 일반 도로에 순환 코스를 만들고, 그 코스를 마치 트랙경기처럼 여러 바퀴 도는 경기로 스프린트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 주로 우승을 놓고 다툽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팀들은 스프린터를 위한 작전을 준비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삼양사 역시 우리 팀의 스프린터 이은희 선수를 위한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출발 직전, 이은희 선수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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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챔피언 이은희 선수 / 사진 제공 : 대한자전거연맹(KCF)
2022년 2월 9일, 「2022 창녕투어 전국도로사이클대회」 첫 경기, 여자 개인도로에서 저는 이은희 선수와 같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초반이었지만, 몇몇 선수들이 펠로톤이라고 부르는 메인 그룹에서 이탈해 선두 그룹을 형성하는 브레이크어웨이(breakaway, BA)를 시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이은희 선수에게 소리쳤습니다.
속도를 올리기 위해 엉덩이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뒤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은희 선수가 넘어졌습니다. 저랑 같이 엉덩이를 들려고 한 순간, 이은희 선수의 자전거 기어가 말리면서 넘어진 겁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팀 동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이은희 선수가 한시라도 빨리 일어나 다시 팀 라인에 합류해주길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이은희 선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우리 팀에 한명이 부족한 걸 본 다른 팀 선수들은 속도를 올리며 앞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팀의 리더로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후 저는 가장 먼저 결승 지점을 통과했고, 팀 또한 구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코칭 스탭들에게 이은희 선수에 대해 물었습니다. 경기를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은희 선수는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외로운 독주를 끝까지 펼친 겁니다. 이은희 선수가 결승 지점을 통과하던 순간, 제 안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혼자 외롭게 내버려둬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넘어지면서 허리와 목에 충격이 많이 왔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줘서 너무 대견했습니다.
다음날 이어진 개인도로 두 번째 경기에서도 이은희 선수는 아프다는 내색 하나 없이,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해줬습니다. 이런 이은희 선수 덕분에 저와 우리 팀은 두 번째 경기에서도 구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다짐했습니다.
‘내일 크리테리움에서는 무조건 은희를 우승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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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투어1 / 사진 제공 : 대한자전거연맹(KCF)
드디어 2022년 2월 11일 창녕투어 마지막 경기, 크리테리움이 시작됐습니다. 경기 초반, 저는 이은희 선수에게 사인을 보내고 브레이크어웨이를 시도했습니다. 체력을 아낄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어변속을 하며 페달을 밟고 또 밟았습니다. 달리면서 뒤를 한번 흘낏 봅니다. 메인 그룹과 거리가 제법 벌어졌습니다. 메인그룹과의 거리를 확인한 이후에도 계속 달렸습니다. 마치 독주 우승을 노리는 선수처럼 전력을 다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다시 뒤를 흘낏 봅니다. 저를 견제하기 위해 메인그룹이 속도를 올리며 따라 옵니다. 그렇게 2km를 달렸을 때, 저는 메인 그룹에 잡혀 흡수되고 맙니다. 아주 잠깐의 행복한 독주를 끝마친 저는 팀 동료들에게 작전 지시를 했습니다.
이번 창녕투어의 크리테리움은 1.2km의 순환코스를 25바퀴, 총 30km를 달리는 경기였습니다. 5바퀴, 4바퀴, 3바퀴.. 남은 바퀴 수가 줄어들수록 선수들의 자리 싸움은 더욱 더 치열해져 갔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남은 거리 표지판을 쳐다봅니다. 600m, 500m, 400m..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때까지 저는 앞에서 4번째 자리에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때였다면 만족할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우승을 노리는 스프린터 앞에서, 스프린터를 도와주는 입장에서, 4번째는 너무 뒤쪽이었습니다. 속도를 올렸습니다. 200m 표지판이 보였을 때, 저는 엉덩이를 들고 전 속력으로 질주하며 맨 앞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이내 숨이 차고 힘이 들었습니다. 스프린트 능력이 부족한 저에겐 다소 긴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뒤따라오고 있는 우리 팀 스프린터에겐 충분한 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쥐어짰습니다. 170m, 160m, 150m... 골인 지점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 앞으로 나와야 할 이은희 선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 왜 안 오지? 이쯤 되면 나와야 되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앞으로 나오지 않는 스프린터, 반대로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결승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 말아? 어떡하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순간 제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붙을 대로 붙어버린 자전거의 가속은 저를 결승선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창녕투어 3관왕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뒤,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이은희 선수가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저를 얼싸 안고 좋아합니다.
“ 언니~ 우리가 1등, 2등이에요 !”
그 순간, 어쩌면 이은희 선수가 저를 위해 뒤에서 다른 선수들을 막아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승선 앞에서 뒤에 있는 선수가 나오지 못하는 걸 확인하고 들어오던 이은희 선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또 이렇게 받기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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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투어2 / 사진 제공 : 대한자전거연맹(KCF)
이렇게 「2022 창녕투어 전국도로사이클대회」가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번 대회를 통해 ‘2022년 새해 첫 3관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결코 저 혼자 얻어낸 것들이 아